모범시민/ F.게리 그레이/ 미국, 2009




  최근 본 영화중에 단연 최고로 뽑을 만한 수작이다.


  결말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용두사미라고 하였고 나도 어느정도 결말에는 만족하지 못하나 결말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은 어디 하나 흠잡을데 없는 진정한 용의 머리와 몸이였다.


  미국 헌법의 기본 원리인 '어떤 누구도 죄가 입증되기 전까지 죄인이 아니다'라는 원리의 허와 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사건의 시작은 한 평범한 가정에서 무장강도 두 명이 침입하고 그 무장강도는 남편이 보는 앞에서 아내를 강간하고 딸을 살해한다. 제라드 버틀러(남편)은 법의 정의로운 심판을 기대하지만 정작 검사와 범죄자간의 은밀한 협의 아래 죄인 중 한 명만 처벌받고 다른 한 명은 순순히 풀려난다. 제라드 버틀러가 똑똑히 두 놈을 보았다고 주장하여도 이를 입증할 만한 물증이 없다고 한 명은 떳떳하게 죄의 대가를 치루지 않는 것이다. 제라드 버틀러는 법에 대해 염증을 느끼고 잠적한다.


  이후 화면은 다른 한 명의 범인의 사형식으로 전환된다. 원래 아무런 통증없이 죽어야 할 죄수가 처절한 고통에 몸부림치며 죽어나가고 검사는 피해자 남편의 짓임을 눈치채고 그를 체포한다. 이제 상황이 역전되어 심증은 있으나 물증이 없는 검사와 죄인 남편간의 대립이 이어진다.

  제라드 버틀러의 복수가 연달아 성공하지만 성공함과 동시에 그 역시 인명을 살상하는 살인자로 변해간다. 결국 마지막에 그는 자신이 파놓은 함정에 걸려 죽게 된다.

  이 영화의 백미는 현대 사법체계가 추구하는 무죄 추정의 원리가 옳은가? 이다. 100명의 범인을 놓쳐도 한 명의 무고한 사람을 벌하면 안된다는 이 논리는 어찌보면 인도적이나 분명 심증과 여러가지 수상쩍은 정황이 있는 여러 추정범인 또한 놓아주기에 비인도적이다. 단순히 책상 앞에 타자를 두드리며 답을 내릴 만한 문제가 아닌 것 같다. 최근 과학수사의 영향으로 조금 더 범죄의 증거를 잡아내는 일이 많아졌다는데 안도할 뿐이다.

  유럽의 어느 나라에서 자신의 어린딸을 성추행한 범인이 무죄로 풀려나자 그 범인을 자신의 손으로 죽이고 자신 또한 자살한 사람이 있었는데 그의 행동이 과연 옳은 것인지 그렇다고 옳지 않은 것인지 판단이 서질 않는다.


  최근 한국에서는 영화 못지 않은 갖가지 잔인한 살인사건이 일어나고 있다. 하지만 가해자들이 받는 형량은 그 잔인함에 비해 상당히 가벼운 처벌을 받는다. 보다 강화된 처벌이 도입됐으면 좋겠지만 일개 개인의 바람에 그치는 현실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참신성 ★

개연성 

연기력 

영상미 

재   미 


종합평점 (별 5개 만점)

한줄평 : 단 한 명의 억울한 이를 만들지 않기 위해, 99명의 범죄자를 풀어주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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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래싱하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