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의자 X의 헌신/ 니시타니 히로시/ 일본, 2009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을 많이 읽어보았다.

그 중 '11문자 살인사건', '화랑정 살인사건', '브루투스의 심장'등 단순 추리물이거나 인간에 대한 성찰이 잘 드러나지 않은 작품이 있는 반면

'비밀', '용의자X의 헌신'의 경우 그의 문학성이 아주 잘 나타나있다.

'백야행'또한 읽어보았는데 이건 중간정도의 작품성을 지니고 있다. 상당히 재밌고 독자를 끌어당기는 소설이나 읽고난 뒤 진한 여운을 남기진 않기 때문이다.

 

 

일본에서 상당히 이름있는 작가인 히가시노 게이고

그의 작품을 5권이상 읽은 나름 그에 대해 관심을 가진 독자로서 이 '용의자X의 헌신'을 최고로 꼽는다.

추리소설로 봐도 새로운 살인을 저질러 다른 시체를 만든 트릭은 내가 여태껏 아가사 크리스티의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등을 비롯해 추리소설의 진수라 불리는 작품을 읽어왔지만 가장 뛰어나다고 생각되는 추리물이다.

극의 전개에 있어서도 억지인 것이 없다. 백야행의 경우 끝끝내 비밀이 밝혀질 때 그것이 어린시절 당한 성폭행이 원인이 되었다는 점은 이해는 가나 충분하지는 않았다. 어린 시절 성폭행을 당하면 그렇게 살아도 되는건가? 하고 말이다.

하지만 용의자X의 헌신에서는 사회의 대다수가 수긍할 정도로 설득력을 지닌 이야기다.

소설책에서 기대하는 인간에 대한 성찰면에서는 단연코 용의자X의 헌신을 꼽는다. 헌신이라는 면에서 위대한 개츠비가 떠오르기도 하지만 개츠비는 재미와는 담을 쌓아둔 작품이였고 무언가 흐린 날 같다. 하지만 이 작품은 생생한 한여름의 낮처럼 뚜렷하며 강렬하다. 누군가에 대한 진정한 사랑을 독자나 관객으로 하여금 느끼게 해주니까.

 

여기까지 책에 대한 내용이였다.

소설에 대한 애정때문에 '실망스러우면 어쩌나'하면서도 이 영화를 보게 되었다.

유가와의 손발이 오그라드는 연기는 다소 민망했다.

나머지 인물들은 무난했고

 

영화의 주인공 이시가미는 영화에서 캐릭터가 좀 재해석된 느낌이였다.

책에서 이시가미는 대학교시절 유도부에서 활동했고 덩치가 크며 외모는 평범하거나 그보다 못한 타입이다. 유도부라는 설정은 노숙자 살인에 대한 밑받침이였을 것이다. 히키코모리라 하면 일반인 생각에 약골일테니까 약골에 살인을 완벽히 저지른게 다소 부합하지 않기 때문이다.

영화에서 이시가미는 마른체형의 평범하거나 그 이상으로 준수한 외모다. 유도부 설정은 없고 새로 등산씬이 눈에 띄는데 등산씬의 의미는 그의 강인함을 유도부대신 보여주지 않나 싶다.

 

극의 전개는 빠르면서도 세세히 소설을 잘 살려가며 진행된다.

문득, 소설을 읽지 않은 다른 사람이 보면 어떨까 생각이 드는데 다소  난해한 부분이 대부분 있으리라 생각된다. 이부분이 아마 이 영화에 대한 나쁜 평의 이유일듯

하지만 소설을 읽은 나는 책과의 차이를 느껴가며 영화가 전개되는 과정을 지켜보았고 '아 이렇게 표현 했구나'하며 잘 보았다.

약간 아쉬웠던 점은 이시마기의 수학에 대한 열정이 영화에서는 많이 드러나있지 않다. 그는 소설에서 수학과 함께라면 감옥마저 낙원일정도로 열정을 나타내는데 단순히 영화에서는 수학천재로만 소개된 것 같다.

 

이 영화의 진수는 모든 것이 치밀하게 짜여져있다는 것이다.

소설로 접한 나는 이미 그 상징을 영화를 보며 하나하나 느꼈지만

(신지(?) 살인때 시계가 나오거나 유가와와 이시가미가 노숙자를 보며 걸어간 후 그 전까지 있던 노숙자의 빈자리가 잡히는 등)

영화로 처음 접한 사람은 다시 한 번 볼 것을 권한다. 아마 보면 볼수록 이 영화의 진수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영화의 핵심이자 소설의 핵심인 인간에 대한 고찰에 대해 말하고 싶다.

먼저 이시가미의 심리 상태를 설명해본다면 다음과 같을 것이다.

'삶에 대한 무료함 및 권태에 헤어나지 못해 자살을 시도하려던 내게 이웃집 야스코 모녀는 나의 삶을 새로 살게한 은인이다. 즉 그녀들은 내 삶의 이유가 된다. 그런 그녀들이 지금 위기에 빠졌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녀들을 구해내야 한다. 그것이 그녀들에게 내가 입은 은혜를 보답하는 길이고 또 내가 살아갈 이유가 되니까.'

 

야스코

'지긋지긋한 전남편(신지)을 우연치 않게 살해하게 됐다. 이를 이시가미가 도와주었지만 그 또한 나를 속박(스토킹)한다면 전남편과 다를게 없다.'

 

그외 유가와는 사실 이 소설/영화에서 인물캐릭터가 가장 이상한 인물(인간적이면서 냉소적이고 논리적인 말그대로 좋은건 다 갖춘 인물)이고 나머지 인물들은 평범하다.

 

 

 

이 영화에서 하이라이트는

스토킹이 야스코에 대한 집착이 아니라 그녀를 위한 헌신이였다는게 드러날 때라 생각한다.

사실 소설을 읽은 나도 스토킹이 이시가미가 그녀를 구해주었는데 다른 남자와 만나니 자신도 모르게 추악한 본성이 드러난 것이라 생각했는데

영화를 보며 다시 느낀 것이 스토킹 또한 사건의 전모가 발각되었을때 자신의 살인이유이자 야스코모녀를 피해자로 만들어리는 그의 헌신의 결정판이라는 것이다.

스토킹이 그의 본심이 아니란건 유가와가 사건에 대한 감을 잡기 전 전혀 없던 행동이고 또 사건이 터지기 전에도 없었던 행동이 유가와가 사건에 대한 감을 잡고나자 갑작스레 등장했다는 점을 통해 설명할 수 있겠다.

 

어떤 사람들은 노숙자에 대한 살인에 비판을 가하는데

소설에서는 이를 유가와의 입을 통해 '이시가미는 범죄와는 전혀 상관없는 사람이야. 하지만 무언가를 위해서라면 범죄보다 무서운 일을 저지를 수도 있지'라며 설명해주고 있다.

또한 영화나 소설이나 그가 자수함으로써(그의 자수는 우연한 것이 아니라 처음 살인을 저지를 때부터 계획적인 것이다) 죄값을 치르는 것으로 마무리 짓고 있다.

자신의 사랑을 위해 남을 해치는 것이 얼마나 추악한가에 대한 심도있는 비판도 가능하지만 위에서 말한대로 소설의 장치로 받아들이자

 

 

 

 

종합하여 말하자면

헌신(바칠헌 몸신 몸을 바친다..)이란게 무엇인지 독자나 영화관람객에게 느끼게 해준 작품이 아니였나 싶다.

우리는 이시가미와 같은 사랑을 하고 있을까? 아니 할 수 있을까?

인간에게 있어 신성불가침인 사랑마저도 현대 사회의 논리로 물이 들어가는 현재, 아련한 물음을 던진 작품이라 생각한다.


참신성 ★

개연성 

연기력 ★☆

영상미 

재   미 


종합평점 ★(별 5개 만점)

한줄평 : 한 남자의 절대적인 헌신이란 이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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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래싱하이